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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알아보기/야구역사 알아보기

[야구시드니올림픽] 야구 국가대표역사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의 기억.

by 리듬을즐기는표범 2017.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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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등의 국제대회에서 야구가 처음으로 프로선수들이 출전 할 수 있었던 것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이다.

 

그리고 올림픽에서 최초로 프로야구선수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 2000년 호주에서 열린 시드니 올림픽이다.

한국 야구국가대표팀의 역사를 알고 한국야구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되살려보는 것도 좋은 기회일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최초로 야구올림픽에 나갔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보자

 

 

2000년 시드니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의 활약


 

<시드니올림픽 당시 한국야구대표팀 동메달 확정하는 순간>

 

 

2000년 시드니올림픽 야구종목에서 국가대표 야구팀은 최종순위 3위로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올림픽 야구 종목에서 한국이 최초로 따낸 매달이자, 남자 구기종목 사상 최초의 메달이다. 메이저리거들이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이 되어 박찬호와 김병현 등의 당시 한국 최고의 선수들이 나오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여, 성적에 대한 불안감이 컸으나 의외로 3위로 동메달을 따내면서 성과를 내었다.

 

아래는 시드니올림픽 국가대표팀엔트리이다.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선수들 중에는 이름이 굵직한 선수들의 이름도 많이 있고, 현재 프로야구 감독들의 이름도 자리잡고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엔트리

 

감독 : 김응용 해태타이거즈 감독

 

코치 : 강병철(SK와이번스 감독), 김인식(두산베어스 감독), 주성노(인하대학교 감독/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감독)

 

투수 :

구대성, 송진우(한화), 김수경, 임선동, 정민태(현대), 박석진, 손민한(롯데), 이승호(SK), 임창용(삼성), 정대현(경희대), 진필중(두산)

포수 :

박경완(현대), 홍성흔(두산)

 

내야수 :

김동주(두산), 김태균, 김한수, 이승엽(삼성), 박종호, 박진만(현대)

*김태균은 지금의 한화 김태균이 아니다. 현 롯데자이언츠 3군총괄 코치진의 김태균 코치이다.

 

외야수:
김기태(삼성/선수단 주장), 박재홍(현대), 이병규(LG), 장성호(해태), 정수근(두산)

 

예비 :
김동수(삼성, 포수), 박한이(동국대, 외야수), 이승학(단국대, 투수), 임수민(상무, 내야수)

 

 

시드니 올림픽 본선 경기

 

2000년 9월 17일 1차전 이탈리아전 (10:2 한국 승)

 

1차전에서는 임선동이 선발투수로 나섰다. 임선동은 당시 현대 유니콘스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두며 에이스수준이었다. 약체로 평가되던 이태리에게 3회에 1실점, 4회에 홈런을 맞고 추가 1실점을 하자 박석진을 올렸고, 박석진은 3.1이닝 동안 무실점 2삼진을 만들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마무리는 손민한이 9회말 3타자 범타처리를 하며 승리하였다.

 

2000년 9월 18일 2차전 호주전 (5:3 한국 패)

   

 

경기전 한국이 쉽게 이길 것이라는 낙관과는 다르게 2회까지 2점씩 주고 받았다. 선발투수는 정민태였다. 경기는 구대성-박석진-송진우-임창용까지 4명의 계투진이 차례로 올라갔다. 구대성은 잘던졌으나 박석진의 위기, 송진우의 불론세이브, 임창용의 추가 실점으로 경기가 패배하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박경완이 수비도중 호주측 주자와 충돌하면서 부상을 입었고, 홍성흔이 포수마스크를 쓰게 되었다. 시드니 올림픽이 호주에서 개최되는 만큼 오심도 꽤 많이 있었지만 미국과의 경기에서 오심이 워낙컸기때문에 뭍힌편이다.

 

2000년 9월 19일 3차전 쿠파전 (6:5 한국 패)

 

선발투수는 현대유니콘스의 김수경이 나섰다. 김수경은 5회까지 2피안타 무실점으로 잘막아냈다. 하지만 6회에 제구력 난조를 보였고, 뒤이어 던진 투수 박석진이 잘 막아내지 못하면서 순식간에 5:4로 역전당하였다. 7회 박재홍이 솔로홈런으로 동점으로 따라 갔으나 손민한이 홈런을 다시 맞으면서 경기는 6:5로 패배하였다.

 

생소한 쿠바 타자들이었고, 아마야구 세계최강팀이었기 때문에 쿠바에게 질것이라는 관측이 강했다. 그리고 결국 쿠바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2000년 9월 20일 4차전 미국전 (0:4 한국 패)

 

정대현은 선발로 나와서 7회까지 6피안타 5삼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강호 미국팀을 맞이하는 경기였다. 미국이었지만 메이저리거는 없었고, 트리플A선수들로만 구성되었던 팀이었다. 그정도 실력으로도 충분히 우승후보팀이 바로 미국팀이었다.

 

한국팀의 선발투수는 정대현이었다. 당시 정대현은 경희대학교 학생으로서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였다. 언더핸드에 약한 미국팀에게 표적선발로 나섰다. 이때 정대현이 유명해졌다. 정대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8회부터는 송진우가 올라왔고 뒤이어 진필중이 올라왔다. 진필중은 만루홈런을 내어주었고, 한국은 4:0으로 무기력하게 패배하였다.

 

이날의 패배로 한국은 1패만 하더라도 4강전 진출을 실패하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한국팀 예선탈락이라는 관측이 진하게 나왔다.

 

2000년 9월 22일 5차전 네덜란드전 (0:2 한국 승)

 

박석진이 선발투수로 나왔다. 이날 경기에서 박석진은 8이닝 무실점 호투하였고, 임창용이 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승리를 따냈다. 네덜란드는 다크호스로 평가되면서 쿠바와 호주를 이겼기 때문에 한국의 고전이 예상되었으나, 이날 경기에서 패배한다면 예선탈락이 되기 때문에 마지막이라는 정신으로 싸웠고, 힘겹게 승리를 따냈다.

 

 

2000년 9월 23일 6차전 한일전 (7:6 한국 승)

선발

1

2

3

4

5

6

7

8

9

10

R

H

E

B

정민태

4

0

0

0

0

0

1

0

0

2

7

9

0

8

마쓰자카 다이스케

2

0

0

0

1

0

2

0

0

1

6

14

2

7

 

 

<이날 경기에서 명불허전 이승엽이 한일전에서 홈런을 쏘아올렸다.>

 

 

우리나라는 정민태를 선발로 내세웠고, 일본은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선발로 나왔다. 괴물투수 마쓰자카가 그 마쓰자카인지 궁금해 하실 것이다. 맞다. 그 괴물투수 마쓰자카가 당시 일본의 선발투수였다. 우리나라는 마쓰자카를 상대로 잘싸웠고, 경기는 연장까지 이어졌다. 힘겹게 승리하였다. 연장에서 도이요시카즈를 만나 2점을 내면서 승리하였다. 이날의 승리와 함께 4강행의 장애물이었던 호주와 네덜란드가 패배하면서 한국은 7차전 남아공만 승리하게 된다면 4강행이 확정이었다. 그리고 남아공을 13:3으로 물리치면서 4강행을 확정지었다.

 

 

4강행 메달도전 대한민국 국가대표

 

2000년 9월 26일 미국 준결승전(4강전) 2:3 한국 패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정대현

0

0

2

0

0

0

0

0

0

2

3

0

2

로이 오스왈트

0

0

0

1

0

0

1

0

1

3

6

1

6

 

<2000년 시드니올림픽 당시 경희대학교 학생 정대현의 투구 모습>

 

본선에서 미국과의 경기에서 호투를 했던 정대현이 다시 선발투수로 나섰다. 정대현이 이름을 제대로 알렸던 등판 경기이다.

이날 정대현은 6과 1/3이닝 동안 24명의 타자를 상대로 3안타 2볼넷을 내주며 1실점 호투를 펼쳤다. 미국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국전 오심에 대한 엠비씨 뉴스데스크 보도 영상>

 

이날의 경기는 심판들의 오심으로 인해 패배하였다. 당시 심판들의 납득하기 힘든 오심들로 인해서 패배하였다.

7회 심판의 오심이 2번이나 나오면서 패배하였다. 1루에서 오심 1번, 3루에서 오심 1번으로 인해서 동점을 내주게 되었고, 결국 9회에 역전홈런을 당하면서 패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억울함을 더하듯...미국이 우승을 하면서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김응용감독이 당시 아쉬움을 표했다. 이날의 오심에 대한 영상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보자. 개인적으로 아무리 동영상을 보아도 그때의 아쉬움이 달래지지 않는다.

 

 

2000년 9월 27일 일본 동메달결정전 1:3 한국 승 (동메달 획득)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마쓰자카 다이스케

0

0

0

0

0

0

0

0

1

1

5

1

7

구대성

0

0

0

0

0

0

0

3

-

3

6

0

5

 

<원조일본킬러 구대성이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일전 등판하고 있는 모습 무려 155구를 던졌다.>

 

 

이날의 선발투수는 구대성이었다. 구대성은 9회까지 155구를 던지면서 11개의 탈삼진을 잡아냈고 1실점만 하면서 일본킬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당시 상대 선발은 괴물투수 마쓰자카였다. 구대성이 김광현 이전의 원조 일본좌완킬러였다. 에피소드로는 전날 김인식 코치가 구대성에게 컨디션이 어떻냐고 물었다. 당시 구대성은 담에걸려서 팔을 제대로 뻗기 힘든 상태였으나 괜찮다고 대답하였고, 그렇다면 내일 선발은 너다. 라는 말과 함께 선발투수가 정해졌다고 한다. 당시 구대성은 하라면 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선발투수가 되었다.

 

경기 초반 구대성은 제구력 난조를 보였으나 경기를 이어나갈 수록 컨디션을 되찾아갔고 9이닝 5피안타 1실점의 호투로 한일전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다.

 

<시드니올림픽당시 이승엽의 한일전 결승타장면>

 

우리나라의 결승타는 8회에 이승엽이 좌중간 2루타를 치면서 2타점 결승타를 따내면서 승리할 수 있었다.

합법적병역브로커의 이승엽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이승엽은 이때까지만해도 대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허구연해설위원의 말이 재미있게 들릴 수 있다.

이승엽이 안타를 못쳤다면 김포공항에 왔을 때 면목이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도 하였다.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획등 당시 엠비씨 보도 영상 이승엽과 구대성의 인터뷰>

 

 

이때부터 약속의 8회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동메달 획득 보도영상을 보자.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던 선수들은 2000년도 김응용호를 타고 승전보를 울리면서 동메달을 따냈다.

무엇보다도 뜻깊었던 것은 일본과의 2번의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는 점이다.

일본과 경기하면 절대로 지면 안된다.

절대로 일본에게는 지면 안된다는 정신으로 승리하였던 것이다.

 

대한민국 야구국가대표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앞으로도 한국야구대표팀의 저력을 기대해본다.

 

 

 

<공감과 댓글은 한국프로야구를 발전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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