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이글스에서 2017년 경질을 끝으로 김성근 감독은 현재까지 둥지를 트지 못한채 야인으로 남아있다. 김성근 감독에 대한 평가는 각기 엇갈린다. 지지 않는 야구를 지향하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승리를 우선으로 삼으며 뛰어난 실력을 자랑해왔다. 하위팀을 상위팀으로 만드는데 탁월한 전문가였고, SK와이번스가 2000년대 중후반 한국프로야구 KBO리그의 최강팀으로 군림하는데도 김성근이 그 중심에 있었다. 한화이글스에 부임한 이후에도 최하위권팀에서 벗어나 와일드카드 쟁탈전에 뛰어든 팀이 되었다. 김성근에 대한 평가는 각양각색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김성근 감독이 지나온 팀에게서의 변화
김성근 감독은 1983년 10월 25일 삼성으로 팀을 이적한 김영덕 감독을 대신하여 OB 베어스(現 두산베어스)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1988년 시즌 중도에 하차하기 전까지 베어스 감독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태평양 돌핀스에서 1989~1990년, 삼성 라이온스에서 1991~1992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1996~1999년, LG트윈스에서 2001~2002년, SK와이번스에서 2007~2011년, 한화이글스에서 2014~201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야구감독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아래는 김성근 감독이 감독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팀 성적표이다. 일단 성적표를 한번 살펴보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자.
역대 김성근 감독 전적 | |||||||
연도 |
팀 |
경기 |
승 |
패 |
무 |
정규리그 |
최종순위 |
1984 |
OB 베어스 |
100 |
58 |
41 |
1 |
1위 |
3위 |
1985 |
110 |
51 |
57 |
2 |
4위 |
4위 | |
1986 |
108 |
56 |
48 |
4 |
4위 |
4위 | |
1987 |
108 |
55 |
52 |
1 |
4위 |
4위 | |
1988 |
108 |
54 |
52 |
2 |
5위 |
5위 | |
통산 |
534 |
274 |
250 |
10 |
|||
1989 |
태평양 돌핀스 |
120 |
62 |
54 |
4 |
3위 |
3위 |
1990 |
120 |
58 |
59 |
3 |
5위 |
5위 | |
통산 |
240 |
120 |
113 |
7 |
|||
1991 |
삼성 라이온스 |
126 |
70 |
55 |
1 |
3위 |
3위 |
1992 |
126 |
67 |
57 |
2 |
4위 |
4위 | |
통산 |
252 |
137 |
112 |
3 |
|||
1996 |
쌍방울 레이더스 |
126 |
70 |
54 |
2 |
2위 |
3위 |
1997 |
126 |
71 |
53 |
2 |
3위 |
3위 | |
1998 |
126 |
58 |
66 |
2 |
6위 |
6위 | |
1999 |
81 |
17 |
59 |
5 |
8위 |
- | |
통산 |
459 |
216 |
232 |
11 |
|||
2001 |
LG 트윈스 |
98 |
49 |
42 |
7 |
6위 |
6위 |
2002 |
133 |
66 |
61 |
6 |
4위 |
준우승 | |
통산 |
231 |
115 |
103 |
13 |
|||
2007 |
SK 와이번스 |
126 |
73 |
48 |
5 |
1위 |
우승 |
2008 |
126 |
83 |
43 |
0 |
1위 |
우승 | |
2009 |
133 |
80 |
47 |
6 |
2위 |
준우승 | |
2010 |
133 |
84 |
47 |
2 |
1위 |
우승 | |
2011 |
93 |
52 |
41 |
0 |
3위 |
- | |
통산 |
611 |
372 |
232 |
13 |
|||
2015 |
한화 이글스 |
144 |
68 |
76 |
0 |
6위 |
6위 |
2016 |
144 |
66 |
75 |
3 |
7위 |
7위 | |
2017 |
43 |
18 |
23 |
0 |
9위 |
- | |
통산 |
331 |
152 |
174 |
3 |
|||
총계 |
2658 |
1386 |
1210 |
60 |
실제로 김성근 감독이 있었던 팀들은 모두 김성근 감독이 경질당하고 나서 성적이 더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현재 한화이글스만이 시즌 최종 성적이 나오지 않았고, 다른 팀들의 경우 그와 같았다고 볼 수 있다. "김성근을 버리면 화를 입는다." "김성근을 자르면 팀이 망한다."라는 의미로 김성근의 저주가 시작되었다. 하나의 의미로는 김성근을 자르면 팀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기 때문에 팀이 망한다는 의미가 들어있고, 다른 해석으로는 김성근이 선수들을 혹사시켜서 선수들의 파워와 체력이 바닥난 상태이기 때문에 팀이 망하므로 후임 감독이 힘들다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성근 감독은 팀을 이끌면서 항상 지옥훈련을 단행하였다. 훈련으로 정신을 무장하며, 지지 않는 팀의 저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 부분 때문에 선수들에게 혹사가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현재 많이 언급되기도 한다.
김성근이 맡았던 팀과 그 후 그팀은 어떻게 되었을까?
OB 베어스 김성근 (1984 ~ 1988), 후임 이광환 (1989~1990)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김성근 감독은 1983년도 6개팀중 5위라는 성적을 거둔 OB베어스의 감독이 된다. 이어 부임한 후 김성근 감독은 1984년 정규시즌 1위, 최종순위 3위라는 성적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1988년 김성근은 OB베어스와 재계약 불가 방침을 받는다. 그렇게 김성근은 팀을 떠나고 후임 감독으로 이광환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김성근을 따르던 코칭스태프는 김성근이 떠나는 태평양 돌핀스로 대거 이동을 하였다. 당시 청보 핀토스를 인수한 태평양 돌핀스는 때마침 물갈이 타이밍이라고 생각하여 김성근 사단을 불러들인다. 이광환 감독은 OB베어스에서 김성근 감독의 색깔빼기를 시도한다. 김성근 감독의 감독야구, 감독이 선수를 만드는 야구를 벗어나 이광환의 '자율야구'를 주장하였다. 그의 야구관을 팀에 이식하려고 시도하였으나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하였다. 7팀중에 7위를 기록한 이광환 감독의 '자율야구'는 80~90년대에 시도된 시대를 앞선 야구관이었으나 베어스 선수들에게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실패한 야구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태평양 돌핀스 김성근 (1989 ~ 1990), 박영길 (1991), 정동진 (1992 ~ 1995)의 결과는 어땠을까?
태평양 돌핀스는 김성근이 오기전 1988년 청보핀토스를 인수하여 팀의 원년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7개팀 중에 7위라는 꼴찌의 결과를 받아냈다. 1989년 김성근 감독이 태평양 돌핀스의 감독으로 부임한 후 태평양에는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다. 그중에 가장 주목받았던 것은 오대산 극기훈련이다. 정신무장을 시켰다는 가장 대표적인 예시 훈련이다. 또한 전력의 핵심이었던 박정현, 최창호, 정명원이라는 신인 3인방이 나타났다. 신인 3인방은 40승 10세이브를 합작하면서 태평양 돌핀스에게 돌풍을 불러일으켰고, 3위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1990년을 끝으로 경질되고 박영길 감독이 후임 감독이 되었다. 박영길 감독은 김성근 감독의 투수 집중력 야구가 아닌 '타격 강화' 야구를 선구하였다. 1991년 시즌에 부임한 박영길 감독은 타격 강화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타자들에게 메이저리그식 빅볼야구를 입히려고 하였으나 '짠물 돌핀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태평양 돌핀스의 변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박영길식 타격이론을 소화할 타자 자체도 없었을 뿐더라 태평양 돌핀스가 애초에 점수를 잘 내지 못하는 팀이 었기 때문에 점수막기식 김성근 야구에서 벗어난 것은 실패를 부를 뿐이었다. 박영길 감독은 1년만에 경질을 당하고 후임 정동진 감독이 1992년에 부임하였으나 6위와 8위(최하위)에 머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정동진 감독은 김성근 감독이 퇴임한 4년 뒤 1994년에 3인방이 돌아오면서 준우승을 이루기도 하였다.
삼성 라이온스 김성근 (1991 ~ 1992), 우용득(1993 ~ 1995)의 결과는 어땠을까?
삼성 라이온스는 전년도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여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으나 한국시리즈에서 1번도 승리를 따내지 못한 채 패배하였다. 이에 책임을 통감한 정동진 감독은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투수 조련사'라고 불리던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였다. 김성근 감독은 삼성라이온스 시절 기존 선수들과 대립이 있었다. 이만수, 강기웅, 류중일 등의 선수들과 대립이 있었는데, 조범현과 신경식 등의 자기 제자들을 영입하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당시에도 베테랑을 중용하여 선수들을 영입했었다. 하지만 영입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고, 기존 선수들간의 대립과 불화가 나면서 팀케미스트리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보였다. 결과는 3위와 4위를 기록하였으나 김성근 감독이 제대로 진두지휘하지 못한 유일한 사례이다. 세대교체의 실패, 팀케미 악화, 팬심약화 등이 원인이었다. 김성근의 감독역사상 가장 흑역사였던 팀이다. 하지만 삼성라이온스는 그가 있던 기간 3위와 4위를 마쳤다. 그 다음해에 우용득 감독이 선임되어 준우승을했으나 556위라는 삼성라이온스의 흑역사가 시작되었다.
쌍방울 레이더스 김성근 (1996 ~ 1999) 그 이후 쌍방울의 향방은 어땠을까?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은 김성근의 능력이 굉장히 크게 발휘되던 시절이라고 평가받는다. 1996년도에 쌍방울 레이더스의 팀연봉 총액이 최하위였던 것과 더불어 1997년부터는 쌍방울 기업이 재정위기를 겪다가 10월에 부도를 맞이하게 되었다. 헝그리정신이라는 칭송을 받으면서 팀을 이끌었다. 김성근이 감독으로 부임하기전 91년부터 쌍방울 레이더스는 68788이라는 순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이후 '돌격대'라는 별명을 얻는다. 선수단의 깊이가 얇았던만큼 쌍방울 레이더스는 선발투수가 단 1명이었다. 1997년 김현욱이 구원으로 20승을 따냈는데, 그것이 한 예이다. 실력보다는 근성으로 경기를 이끌어갔다. 변칙적으로 팀운영을 통해 시즌을 이끌어 나아갔던 것이다. 그결과 96년도에 2위와 97년도에는 3위를 기록했다. 98년도와 99년도에는 6위와 8위를 기록했는데, 모기업의 재정위기로 선수들이 해태타이거즈와 현대유니콘스로 많이 팔려나갔고, 주전선수들도 어렵게 버티던 96년도와 97년도의 여파로 인해서 부상이 많았다. 결국 99년도에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김성근 감독을 시즌 도중 경질하였고, 쌍방울 레이더스는 IMF의 여파로 인해 야구팀을 해체하게된다. 남은 시즌은 KBO가 위탁 운영을 하였다.
LG트윈스 김성근 (2001(감독대행) ~ 2002), 이광환,이순철,김재박,박종훈(2003 ~ 2011)비밀번호 : 666858757를 완성하다
2001년 시즌을 앞두고 김성근 감독은 엘지 트윈스의 2군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시즌 도중 이광은 감독이 최악의 성적을 보이면서 엘지 트윈스의 성적이 말이 아니었다. 이후 김성근 감독은 1군 수석 코치가 되었고, 이광은 감독이 성적이 도저히 말이 아닌 것을 어쩔 수 없어하며 이광은 감독을 경질하고 김성근 수석코치를 감독대행으로 하였다. 김성근은 감독대행으로 시즌을 아쉽게도 4위인 한화이글스와 1게임차로 6위로 마쳤다. 2002년 엘지트윈스의 정식감독이되어 겨울에 혹독한 지옥훈련을 통해 우승에 도전하는 팀이라는 이미지를 심었다. 하지만 시즌 초반 경질설에 휘말릴 만큼 부진을 하였다. 여름이 되면서 LG트윈스는 돌풍을 일으키며 극적으로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된다. 이 때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커리어가 좋아졌는데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거두게 된다. 이 때 우승팀 삼성라이온스의 감독이었던 김응용 감독에게 야신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야신이 되었다.
그러나 2002년 준우승을 시키고도 김성근 감독은 엘지트윈스로부터 경질을 당한다. 그 이유는 LG트윈스는 '신바람 야구'를 추구하는데 잦은 투수교체와 번트 등은 팀과 색깔이 맞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로 인해 프런트와 김성금 감독간의 갈등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기존에 엘지트윈스는 이광환 감독을 차기 감독으로 내정하고 2002년 시즌 도중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려했으나 여름에 성적이 반등하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래서 시즌 종료 후 준우승을 한 이후 해임이 되었다. 차기 감독은 '자율야구'의 달인 이광환 감독이었다. 이후 엘지트윈스는 엘지트윈스 비밀번호를 만들게 된다. LG트윈스의 비밀번호는 666858757이다. 이 시기에 03~04년 프렌차이즈 유지현, 김재현, 이상훈을 은퇴 및 이적을 시키며 정리하였고, 김재현의 각서파동, 이상훈의 SK트레이드카드 단행을 하였다. 이 후 김재박 감독의 DTD가 실현이 되고 박종훈 감독까지 비밀번호를 만들면서 엘지트윈스는 김성근 감독을 경질 한 저주를 받게되었다. 2013년 시즌이 되어서야 2002년 이후 첫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면서 겨우 비밀번호를 끊어낼 수 있었다.
SK와이번스 김성근 (2007 ~ 2011), 이만수 (2012 ~ 2014), 김용희 (2015 ~2016) 왕조가 쇠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김성근 감독은 SK와이번스에 2007년부터 감독직을 맡게 된다. SK와이번스는 2005년에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으나 4위로 마감하였고, 2006년 6위로 마친 시즌을 끝으로 조범현 감독과 결별을 하게된다. 이때 야심차게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였고 이만수 수석코치를 영입하면서 출발을 한다. 김성근 감독은 시즌 전 SK와이번스를 올해 우승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하였고, 2007년 2008년 2010년에는 엄청난 독주를 한다. 봄부터 치고 올라와서 2위와의 격차가 큰 1강체제로 팀을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3회를 우승시킨 경력과 2009년에는 시즌 내 19연승이라는 기록도 세운다. 2011년 1위팀을 3위팀까지 내려놓았다는 핑계를 삼아 SK와이번스 프런트는 김성근 감독을 경질한다. 이전에 이만수 수석 코치를 영입할 때 김성근 감독과의 계약기간이 마무리되면 감독을 시켜주겠다고 했으나, SK와이번스가 워낙 막강해진 상태라 경질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핑계거리를 찾아나서던 SK와이번스는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게된다. 이후 SK와이번스는 이만수 감독체제로 대행시절 2011년 2위로 시즌을 마쳤고, 2012년에도 후반기 막판 퍼스트를 통해 2위로 시즌을 마쳤으나 2013년 6위 2014년 5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만수 감독에 대한 평가가 여러가지로 갈리지만, 김성근 감독 색깔을 무리하게 빨리 빼려고 하면서 빅볼야구를 추구하였던 것이 우승전력의 팀이 우승하지 못하였던 점이라는 평가가 있으며, 김성근이 만든 팀에서 선수들만 야구해서 준우승 성적을 만들어낸 것이다라는 평가도 있다. 한켠에서는 이만수 감독이 잘 수습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후 SK와이번스는 6556이라는 순위를 쓰면서 KBO리그 2000년대 후반의 왕조시절이 종결되면서 하향세를 걷게 되었다. 현재는 트레이 힐만 감독이 5년만에 SK와이번스를 재건 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한화이글스 김성근 (2015 ~ 2017) 감독의 마지막 감독 경력이 될 수도 있다.
한화이글스는 대표적인 꼴찌팀이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2011년 8개팀중 6위를 한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꼴찌를 하였다. 887899의 성적을 이어갔다. 2015년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후 10개팀중 6위를 차지하면서 반등을 노렸으나 2016년에는 7위를 차지하고 2017년 시즌 도중 구단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경질을 당했다. 한화 구단의 많은 투자가 있었으나 한화 이글스 팀자체가 워낙 패배에 익숙해있는 모습이어서 이러한 정신력을 바꾸려고 노력하였다. 김성근이 유일하게 소생시키지 못한 팀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 한화이글스에 어떠한 저주가 생길지 모른다. 김성근 감독에 대한 평가는 한화이글스를 거치면서 상당히 나빠졌다. 선수혹사 논란과 언론플레이 논란 등 여러가지 비판을 받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패배한 날에도 웃을 수 있었고, 경기력이 대학야구만 못하다는 저질야구라는 비난을 벗어날 수 있던 계기는 김성근 감독이 바꿔낸 한화 이글스의 변화인 것은 분명하다. 2017년 시즌과 그 이후에 한화이글스가 몰락을 하게될지 재기를 하게 될지 지켜봐야한다.
<공감과 댓글은 한국프로야구를 발전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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