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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야구이야기] 인천야구의 슬픔 1탄 인천을 배신한 현대유니콘스 연고지 이전 사건. 넥센과 SK의 전신 삼청태현은 누구의 전신인가?

by 리듬을즐기는표범 2017.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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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야구의 슬픔과 상처를 시리즈로 구성하여 블로그 포스팅을 진행할까 합니다. 인천야구팬에게는 슬픔이 있다. 인천 야구팬들이 가진 상처들은 꽤 많이 있다. 오늘의 포스팅에서는 인천야구단의 연고지 이전에 대한 비극적인 인천야구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시작된 이래로 이렇게 많이 팀이 변한 곳이 없었다. 심지어 82년부터 현재까지 30년 넘게 자신의 팀명을 유지하면서 자리를 잡은 팀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라이온즈, 롯데자이언츠와 같은 팀들이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인천에게는 팀명이 계속 바뀌면서 자신의 팀이 바뀌어가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

 

인천을 연고로 했던 팀들의 역사

 

<SK와이번스 태평양데이 행사 2008년 5월 4일 넥센 히어로즈 전 경기>

 

1982년부터 1999년까지 인천의 야구 연고지는 인천+경기도+강원도를 연고지로 했다. 팀들은 삼미슈퍼스타즈, 청보핀토스, 태평양돌핀스, 현대유니콘스이다. 이를 줄여불러 "삼청태현"이라고 부른다. 이 4개의 팀 중 우승을 경험했던 팀은 현대유니콘스가 유일하다. 98, 00, 03, 0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며 왕조를 이룩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우승은 반쪽자리 우승이었다. 인천을 배신한 현대이기 때문에 "삼청태"라고만 불리기도 한다.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는 이렇다할 성적은 내지 못한채 1996년 현대그룹으로 인수가 되었다. 이 후 현대 유니콘스로 구단명을 정한 후 98년에 인천 연고지 최초 우승을 이룩하게 된다. 인천시민들은 태평양 돌핀스까지 인수되면서 팀이 또 바뀐다며 낙심하였지만, 현대그룹이 인수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자회사가 들어오기 때문에 이제 팀이 바뀌지 않겠다라는 안심을 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그 팀이 1998년에 우승을 하면서 인천 야구에 다시 붐이 일어났다.

 

 

현대 유니콘스의 인천 배신, SK 와이번스의 인천 입성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1999년 시즌을 끝으로 현대 유니콘스는 인천을 연고지에서 버리고,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겠다며 주장하였다. 2000년 1월 현대는 연고지 이전을 잠실구장으로 하겠다고 공언을 하였고 인천 야구팬들의 멘탈을 붕괴시켰다. 사연의 이유는 인천의 당시 경기장이었던 도원야구장이 작기 때문에 야구팬들이 많이 모이지 않고 수익이 되지 않는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또한 2000년 시즌 중반의 모기업 부도와 2001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아들들의 왕자의 난으로 현대그룹이 찢어지면서 재정문제가 있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현대 유니콘스는 인천을 배신하였고, 잠실구장에서 받아주지 않자 인천으로 돌아오려고 하였다. 하지만 인천 역시 한번 배신한 구단을 다시 들여올 수 없기에 이를 거절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 당시 전주를 연고로 하고 있던 쌍방울 레인더스가 SK그룹으로 인수되면서 SK는 전주연고가 아닌 자신들도 서울 연고를 하고 싶다고 KBO에 신청하였다. 하지만 KBO는 서울 연고는 현대 유니콘스가 먼저 주장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반복해서 하였다. SK는 그룹이 창업을 시작했던 수원으로 연고를 변경하여 신청할 것을 고민하였으나 모든 구단이 광역시를 연고로 하고 있는데 갑자기 왠 수원이냐는 내부 논의와 함께 현대가 없었던 인천을 연고지로 하면서 SK와이번스가 창단되었다.

 

이 때의 인천 야구의 상처로 인해 인천 야구의 팬들이 나뉘었다.

결국 새롭게 인천으로 들어온 SK를 맞이하며 SK와이번스를 응원하는 팬, 연고지를 이전했지만 현대 유니콘스의 팀의 선수들을 좋아하여 계속해서 현대유니콘스를 응원하는 팬, SK에 대한 이질감과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야구 자체를 끊어버린 팬으로 3등분되었다. 인천 야구의 슬픔과 상처이다. 인천 지역 전체적으로 야구에 대한 엄청난 정신적 타격과 공황을 겪은 인천 야구팬들에게 경악할 일이었다.

 

이 때 팬덤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인천야구팬이 상당수가 사라졌는데, 2003년 현대유니콘스와 SK와이번스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나면서 역대 KBO리그 한국시리즈 흥행 대 참패라는 놀라운 역사를 쓰게 되었다. 경기가 7차전까지 갔음에도 불구하고 7차전 당일날까지 표가 남았고 외야석에는 빈자리가 상당했다. 2002년의 한국시리즈에서 6경기 전경기가 매진되었음을 생각하면 비교할만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 때 양팀 응원 단장들의 상대팀 팬은 그룹에서 동원된 직원이라며 디스전을 펼쳤다. 역대 최악의 한국시리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도에는 우승의 기억보다는 이승엽의 아시아 홈런왕이라는 기록이 더 남아있을 뿐이다.

 

 

인천을 품었던 SK와이번스와 현대유니콘스의 종말 그리고 히어로즈 구단의 탄생

SK는 창단이후 지금까지 인천SK라는 구호를 입에 달며 응원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성적과 약 15년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뒤돌아섰던 팬들이 돌아오고 있고, 그 당시 학생이던 팬들이 지금 성인이 되어 팬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도 인천야구팬들과 넥센히어로즈팬들간의 사이에서 삼청태현SK, 삼청태현솩, 삼청태현넥, 삼청태솩, 삼청태SK와이번스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뿌리를 잃어버린 전 태평양 돌핀스, 현대유니콘스 이숭용 선수>

 

현대유니콘스는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시도하는 대신에 목동 야구장을 쓰기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서울 연고지를 이미 이루거 있던 LG트윈스와 두산베어스에게 보상금을 줘야했고, 목동 야구장을 리모델링해야하는 재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임시 연고지를 수원으로 택하여 수원에 둥지를 텄다. 이때부터 현대유니콘스는 종말을 눈에 앞두고 있었다. 애초에 서울로 떠날 현대유니콘스를 좋아할 이유가 수원팬들에게는 없었을 뿐더러 현대그룹내에서도 왕자의 난으로 인해 시끌벅적했다. 결국 현대 유니콘스는 해체를 하기로 하였고, 인수할 그룹을 찾아나섰다. 이 당시 STX, 농협, KT의 현대 유니콘스 인수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무산되면서, KBO는 이장석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에게 현대의 해체 및 선수단만 인수해서 재창단하는 형식으로 신생구단 창단을 허락하였고 이때 창단된 팀이 우리히어로즈가 되었다.

 

기존에 KBO 가입비를 받아야하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으나 KBO는 7개구단으로 운영되는 모습을 막아야했기 때문에 120억 가입비를 분납하는 조건으로 히어로즈가 창단되었다. 기존의 KT역시 2007년에 60억원대의 가입금과 해체 후 재창단 방식을 KBO와 논의를 했기 때문에 만약에라는 어떠한 전제조건을 붙인다해도 계보는 끊기게 되어버린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계보단절 SK와이번스와 넥센히어로즈는 공식적으로 모두 계보 단절을 하게되었다. SK와이번스 역시 쌍방울 레인더스를 해체하고 재창단하는 형식으로 KBO에 입성하였기 때문이다. 이로서 삼청태 또는 삼청태현의 계보에 대해서 인천시민과 넥센히어로즈의 팬들간의 공방전이 벌어지게된다.

 

 

다음편에서 인천야구의 슬픔과 상처의 2탄이 이어집니다.

<공감과 댓글은 한국프로야구를 발전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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