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천의 야구 연고팀이 인천 도원야구장을 홈구장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인천의 야구팀 현대유니콘스가 인천을 버리고 떠나기 전까지는 인천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열망은 엄청났다. 그들은 일명 '도원전사'라고 불린다. 마산의 야구팬들이 열성적이어서 마산아재라고 부르는데, 인천의 야구 열성팬인 인천아재들은 도원아재가 아닌 도원전사로 불릴 만큼 초강성팬들이었다. 도원 전사들은 아재가 아니라 전사인 만큼 마산아재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부족하지 않을 만한 팬덤을 가지고 있었다. 마산과 인천은 모두 산업단지가 있고, 대부분의 노동자가 블루컬러의 노동자가 많았기 때문에 즐길 수 있던 문화시설로는 프로야구 밖에 없었다. 당시 인천에는 프로축구팀도 없었기 때문에 야구에 대한 집중적인 강성 팬덤이 컸다.
해안도시의 특성상 사람들의 성향이 거친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천의 삼미슈퍼스타즈는 프로스포츠 역사상 다시 나오기 힘든 승률 1할대 프로야구단이었다. 또한 이름에 걸맞은 슈퍼스타가 한명도 없었고, 구단의 운영자금조차 적었다. 툭하면 모기업이 바뀌고, 팀명이 바뀌며 팬들의 울분은 쌓여만 갔다. 울분은 야구장에서 내뱉어졌는데 보호 그물망은 야구장으로 들어가기위한 등반대였고, 쓰레기통과 의자는 땔감으로 쓰이는 것이 빈번했다. 거기에 현대유니콘스의 우승으로 팬들은 진정을 찾아갔으나, 현대의 배신으로 인해 울화는 더욱 커졌다. 이후 SK와이번스가 인천에 입성하면서 2003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고, 2007년부터 왕조시대를 이루면서 신규팬이 대거 입성되어 많은 물갈이가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SK와이번스의 일방적인 김성근 감독 경질로 인해서 그 정신을 이어받아 문학구장의 마운드를 불태우기도 했다. 지금은 인천유나이티드의 파멸적인 패배들로 인해 축구팀 서포터즈가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도원아재들의 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단 청문회 요구
1985년 삼미슈퍼스타즈는 시범경기에서 3승 1무 1패라는 호성적을 거두며 기쁜 시작을 했다. 또한 롯데 자이언츠와 사직 개막전에서 최강 최동원을 누르면서 중위 순위권을 목표로 시즌이 개막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재앙의 시작이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4월 한달간 18연패라는 전무후무한 연패 신기록을 세웠다. 이것은 기존의 11연패 기록을 깨뜨린 최고 신기록이다. 11연패 기록 역시 삼미 본인들이 세운 전년도 기록이다. 이 기록적인 패배에 인천 야구팬들은 도원구장 앞에서 구단의 버스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당시 감독인 김진영 감독의 청문회를 할 것을 요청하였다. 결국 삼미 슈퍼스타즈 구단은 김진영 감독에게 시즌 중간 휴가명령을 내리면서 신용균 감독대행체제로 잔여 시즌을 치루게 된다. 18연패를 탈출한 4월 30일 다음날 5월 1일 삼미 슈퍼스타즈는 청보식품으로 구단을 매각하는 소식까지 발표하는 사단을 냈다.
파울 그물망을 타고 다니며, 불을 지르는 도원전사
<마치 인천앞바다의 어부인 것처럼 보이는 파울망을 타는 도원전사의 모습>
도원야구장 투척 사건 및 불을 지피는 사건
파울망을 열심히 넘나드는 사건은 단일 사건이 아닌 틈만나면 이뤄지는 행사였다. 역전을 당하거나 경기가 질 것 같은 예감이 들 때면 도원전사들은 파울망을 타고 넘어다녔다. 파울망을 말아서 경기하던 도중 선수석으로 직접 찾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시절에는 이기는 경기보다 지는 경기가 많았고, 술취한 아저씨들의 행패가 엄청나던 시절이다. 불타고 있는 쓰레기통을 경기장에 던지고 소주팩, 소주병 등을 투척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내가 야구장 와서 이긴 경기를 본적이 한번도 없다!!", "내가 야구장 올때마다 진다!!" 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팬들도 많았으며, 인천팀의 전경기를 전부 따라다니면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경찰이 출동하여 팬들을 설득하여 끌어내렸고, 알몸으로 몸에 페인트를 칠한 상태로 응원하는 아재들도 있었다.
태평양 돌핀스와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1989년 10월 15일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가 있었다. 이날 좌타자 원원근의 타석 때 조계현이 공을 던졌는데 주심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하자 태평양의 김성근 감독이 "공이 낮았다."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결국 심판의 볼 선언으로 볼넷을 얻지 못한 원원근은 병살타를 치면서 태평양 돌핀스의 도원 전사들은 아쉬움이 더 컸다. 이 바람에 도원전사들이 3차전 도원구장에 집결하였다. 인천도원구장의 3루쪽 그물망에는 "이일복 심판을 영구제명하라" 이라는 플랜카드가 나붙어있었다. 급기야 3-0으로 태평양 돌핀스가 경기에서 뒤지기 시작하자 경기장에는 온갖 오물과 술병이 날라다니기 시작했다. 급기야 해태 선수들은 헬멧을 쓰고 수비에 나서는 등의 기괴한 사건이 있었다. 10월 18일에는 난동으로 번진 관중들이 빈병과 깡통을 엄청나게 던져 경기를 치룰 수 없는 수준이었고 일부 전사들은 파울망에 불을 지르는 등의 화염방사 공격까지 강행하였다. 한 때 김응용감독은 몰수패를 당하더라도 경기를 하지 못하겠다며 선수들을 덕아웃으로 불러들여 보호하기도 하였다.
김응룡감독은 4차전에서 3승을 따내고 더이상 인천에서 경기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4회말에 선동열을 등판시켰는데 타자 8명을 모조리 삼진을 잡아내면서 오물 투척의 수위는 더욱 심해졌다. 투병전이 4차전에도 이어지면서 김응용 감독은 경기장에 나아갈 때 헬멧을 쓰고 다녔다. 일부 도원전사들은 파울그물망에 불을 지르는 등의 전사들의 면모극치를 보여주었다. 경기가 종료된 후 해태선수들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면서 버스에 탑승하고 야구장을 떠났다. 태평양 선수들 역시 오물을 맞아가며 경기장을 나갔다. 당시 해태, 롯데팬들도 도원구장에서만은 조용했다.
도원구장은 표를 사지 않고도 야구를 볼 수 있다. 도원구장 추락 사건.
이날 관중 추락사건도 있었다. 1980년대 후반이던 인천 도원 야구장은 건물자체가 높지 않아서 마음 먹으면 벽을 타고 올라가서 관중석에 들어올 수 있었다. 마산구장처럼 용접기를 동원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도원구장 옆의 인천광성고등학교 동산에 올라가서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들도 많았다. 거기에 구장 최상단에 지붕이 설치되어있지도 않아서 구단 최상단의 난간에 앉아서 경기를 관전하는 도원전사들도 넘쳐났다. 1989년 10월 11일 인천야구장에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4회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 도원전사들중 한명이었던 40대 강모씨가 구장 본부석 최상단 난간에 앉아서 경기를 보다가 흥분하여 중심을 잃고 30여미터 바닥 아래로 추락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혈액 검사 결과 알콜은 검출되지 않았다. 해당 관중은 머리를 다치고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태평양 구단이 그의 치료비를 모두 제공해주었다고 한다.
이 때 야구계에서는 팬문화에 대한 엄청난 우려를 표하였고, 당시 심판위원장, 해설위원, 사무총장 등이 총평을 내며, 야구 팬문화의 변화를 촉구하였다. 하지만 그후 7년이 지난 1996년 야구가 TV로 중계가 될 당시 도원구장의 그물을 타고 다니는 곡예사 등장이 이슈였다. '질서를 지키는 인천시민, 양보하는 야구 팬'이라는 캐치프라이즈를 걸었던 현대 유니콘스의 구호는 그야말로 구호에 그쳤다. 당시 중계하던 아나운서가 "저런 사람은 크게 사진을 찍어서 걸어두고 창피를 줘야한다."며 혀를 치기도 했다. 오물더미와 쓰레기 더미로 남은 도원구장의 도원전사들의 역사는 실로 엄청났다.
도원전사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문학경기장 폭동사건 소요사태.
2011년 8월 18일 SK와이번스 팬들이 경기 직후 그라운드에 난입하여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다. 20세기에나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관중 난입은 21세기에도 이어졌다. SK와이번스는 김성근 감독을 전격 경질하였고, 이에 SK의 팬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구단 공식 홈페이지 '용틀임마당' 게시판은 꾸준히 김성근 감독의 복귀를 다시하라는 요구글이 릴레이 형식으로 도배되었고, 게시판이 과열되자 구단은 게시판을 없애며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대체한다는 공지를 올렸다. 이는 곧 용틀임마당의 부활을 요구하는 경기장 피켓시위까지 이뤄졌다.
구단 프런트는 경기전 전경 1개중대를 요청하여 배치하였고, 이날 경기장에 난입한 관중이 4명이나 되었다. 시위 도중 삼성 라이온스 채태인의 결승 홈런이 터지자 1루 홈 관중석에서는 탄성이 소리가 나오는 기괴한 현상까지 보였다. 물병과 쓰레기가 그라운드에 떨어지고 수차례 경기가 일시 중단되었으며, 쓰레기통이 통째로 떨어지고 곡예사가 다시 등장하는 등 도원아재들이 문학구장에서 부활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퍼져나갔다.
<SK와이번스 문학구장의 불타는 그라운드, 야구장에서 유니폼과 플랜카드를 태우며 시위하는 SK팬>
경기가 종료되고 9시에 조명이 꺼지자 문학야구장에는 익사이팅존의 낮은 그물망을 통해 수백명의 SK팬들이 난입하였다. 난입한 관중들은 SK와이번스 유니폼을 마운드위에서 불태우고 불펜 전기차를 타고 폭주를 하였다. 구단 집기나 냉장고 안의 음료수를 무단으로 훔치거나 심한 난동을 부렸고, 급기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과 경찰을 보고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구단은 3500만원의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고, 야구장 곧곧에는 민경삼 당시 SK구단주, 신영철 단장, 프런트에 대한 욕이 난무하고 이만수는 유다라는 별명과 함께 온갖낙서가 엄청났다. SK와이번스 상품 매장은 유리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부수고 들어올까바 유리문을 잠가 굳게 잠그고 발을 동동굴었고, 팀에서 나가게 된 김성근 감독의 상품을 철거시키자 매장의 창고에 김성근 감독의 넘버와 이름을 다시 진열하며 팔으라고 강요당하기도 했다. 마운드 아래는 김성근 감독의 이름이 적힌 플랜카드를 묻으며 기도를 하는 팬들도 있었다. 당시 필자는 군대에서 복무를 하고 있는 말년병장이었는데, 후임들의 관물대의 물건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미싱과 고성 욕설을 난무하였던 기억이 있다. 해당 사건 이후 SK와이번스 프런트 퇴진운동이 한동안 이어졌다.
이렇게 도원아재들은 아재가 아니라 전사였고 그들은 도원전사로 기억되고 있다.
<공감과 댓글은 한국프로야구를 발전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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