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관광할 곳이 정말 적다...
광주라는 곳으로 친구가 살고 있기에 한번 다녀올 용기를 내어 다녀와보았다.
광주...518민주화운동의 기억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5월에 다녀온 것이기에
매우 뒷북이라고 보기 딱 좋으나
그래도 광주하면 5월이기에 5월의 광주를 적어보겠다.
일단 상징성이 큰 광주민주화운동의 중심지 옛전남도청의 사진으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사실 광주하면 떠오르는 건 일곱시라는 단어이다.
서울 = 깍쟁이, 코베어가는 사람들 , 전라도 = 뒤통수
왜 이런 지역의 오명들이 남아 있는 것일까
배신과 뒤통수의 상징이라고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전라도의 중심 광주광역시에서
왜 이 지역은 그런 오명을 쓰게 된 것인지.... 찾아보았다.
그 기원의 첫 시작은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영조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보았다.
황윤석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황윤석은 이재난고라는 일기를 통해서 조선시대의 일상에 대하여 적어두었다.
그 일기를 보고 이지양이라는 분이 적은 <호남 선비 황윤석이 본 호남차별 문제> 라는 논문을
어느 블로거가 쓴글을 가져와 보았다.
위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전라도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조선시대때도 있었따.
꼬리의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
엄창록이라는 정치 설계자가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낸 호남과 영남의 지역감정
전라도의 악감정이 생겼다고 하고 있으나....
꼬리의 꼬리를 무는 이야기도 이 논문을 놓친듯 하다.
물론 그 시기의 정치 설계자의 지역감정 물고 늘어지기가 지금의 지역감정을 전혀 만들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황윤석이 본 조선은 1700년대에도 전라도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
"돈실함과 속임수"로 전라도와 호남을 평가하고 있는데... 이는 흔히 지금 말하는 "뒤통수"와 다를 바가 없겠다.
조선시대 황윤석이본 전라도가 미움받은 이유
첫째, 전라도는 사박하고 분열된 기풍을 지녔다. 사기를 겁나 치고 경박하다는 소리다.
둘째, 변괴가 많다. 흉악한 범죄가 많았다.
셋째, 전라도 출신 역적이 많다.
옛 시대에 죄를 지은자들은 전라도 깡촌으로 유배를 보냈었는데.... 그 때문인 것일까?
아니면 훈요십조 때문인 것일까?
고려시대 태조왕건의 훈요10조의 기원
훈요십조는 태조 왕건이 후대의 왕들을 위해 남긴 10가지의 유훈이다.
여러가지 질서 있는 10가지를 남겼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제 8조이다.
제8조, 차현 이남 공주강 바깥은 산의 형태와 땅의 기세가 등지고 거슬러 인심 역시 좋지 않다. 그 쪽 밑의 사람들이 조정에 들어와 종친이나 외척과 혼인하여 국정을 잡게되면 국가의 변란을 일으키거나, 임금을 시해하려는 난이 일어날 수 있다. 양민이라 하더라도 관직에 올려 일을 맡겨서는 안되며, 간교한말로 권세를 농락하고 정사를 문란케하여 재앙을 일으키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라는 둥의 내용인데...
차현이남과 공주강의 바깥이라 함은 청주(궁예의 친위세력 근거지)와 그 아래지역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고,
차령고개 이남과 공주강 사이의 지역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쉽게 날조를 약간보태면 "전라도는 배역의 땅이니 그곳사람들과 상종하지마라" 라는 이야기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내용을 근거로 고려시대때부터 전라도는 위험지역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으나,
태조왕건이 왕위를 물려줄때 전라도 나주출신의 왕무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전라도에서 고려시대 정부에 대하여 부정적인 부분이 없었던것을 보면
사실상 전라도는 고려시대에서 경주최씨집안인 최제안과 최항 그리고 현종이 날조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혹 어떤 이들은
역사문제 연구소라는 사람들이 97년에 발표한 강연에 의하면,
옛 삼국시대에서
백제인들이 당나라사람들을 몰아내는데 일조하여 백제유민들을 전략적으로 우대했으나,
당나라가 완전히 몰아내지고 난 이후
통일신라시대가 되면서,
경상도 경주를 비롯한 영남사람들은 호남사람들을 깔보게 되고, 푸대접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권력진출을 막기 위해 전라도에 대한 악감정을 심었다고 하는 이도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은
군생활 시절 전라도 출신 선임들이 고약했던 기억이 있어 약간의 감정이 있지만,
그렇다고 한들... 영남지방 사람들이 필자에게 통수를 2번정도 쳤었기에
지역에 관계없이 그 사람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러한 생각을 담아 광주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광주 여행 1탄은
왜 전라도는 왜 광주는 뒤통수의 상징이 되었는가로 마무리....하며
2탄에서 진짜 여행기록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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