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유니폼 뒤에 붙은 숫자, 그냥 선수 구분용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등번호에는 각 선수의 역사, 철학, 그리고 숨겨진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프로야구를 오래 본 팬이라면 알겠지만, 특정 번호는 특정 포지션이나 레전드를 상징한다. 오늘은 야구 등번호의 의미와 선수들의 재미있는 사연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야구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백넘버에는 어떤의미가 있고 야구 등번호의 숨겨진 의미와 선수들의 에피소드 총정리해보았다. 에이스 18번부터 김강민 0번까지. SSG 랜더스 중심으로 KBO 영구결번과 등번호 사연을 정리했다.

야구 등번호의 역사와 기원
야구에서 등번호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29년 미국 뉴욕 양키스에서다. 처음에는 선수를 구분하기 위한 단순한 목적이었고, 타순대로 번호를 부여했다. 1번 타자는 1번, 2번 타자는 2번, 이런 식이었다.

이후 수비 포지션별로 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이 생겼다. 투수 1번, 포수 2번, 1루수 3번, 2루수 4번, 3루수 5번, 유격수 6번, 좌익수 7번, 중견수 8번, 우익수 9번. 이 포지션 넘버는 지금도 기록지 작성에 쓰인다.
하지만 현대 야구에서 등번호는 단순한 구분을 넘어 선수의 정체성이자 상징이 됐다. 특정 레전드가 달았던 번호는 후배들이 선망하는 번호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영구결번으로 묶여 아무도 쓸 수 없게 되기도 한다.
KBO 등번호의 기본 법칙과 관례
KBO 리그에서 등번호에는 몇 가지 암묵적인 룰이 있다.
| 등번호 범위 | 주로 사용하는 선수 |
|---|---|
| 1~9번 | 주축 야수, 에이스 투수 (1번) |
| 10~19번 | 주축 투수, 핵심 야수 |
| 20~49번 | 일반 선수 (취향에 따라 선택) |
| 50번대 이상 | 신인, 육성 선수, 코칭스태프 |
| 70~90번대 | 코칭스태프, 감독 |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관례일 뿐이다. 실제로는 선수 개인의 취향이나 특별한 사연에 따라 등번호가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KBO 프로야구 포지션별 선호하는 등번호 의미 (1번, 7번, 18번 등)
1번: 에이스 투수의 상징
야구에서 1번은 에이스 투수를 상징한다. 일본 고교야구에서는 지금도 1번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네가 이 팀의 에이스다"라는 의미다. KBO에서도 2000년대 이후 투수들이 1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인천 연고 SSG 랜더스(전신 SK 와이번스)에서는 송은범이 2003년 1차 지명 초고교급 유망주로 입단하며 1번을 달았다. 송은범은 인천 동산고 출신으로, 2002년 고교 투수 빅3 중 한 명이었다. 나중에는 46번으로 달며 안정화 되었다.
7번: 유격수의 전통
한국야구에서 7번은 유격수를 상징하는 번호다. 이 전통은 70~80년대 한국 야구의 전설 김재박에서 시작됐다. 당시 김재박은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비와 주루플레이를 보여주던 완벽한 유격수였고, 그가 달았던 7번은 이후 유격수들이 선망하는 번호가 됐다. 유격수의 레전드중에 한명인 삼성라이온즈의 박진만 감독도 7번이었다. 7번이 유격수여서 그런가 정근우 선수는 2루수인데 8번을 달았다.
18번: 선동열이 만든 에이스 투수의 상징
'국보 투수' 선동열의 영향으로 한국 야구에서 18번은 팀 에이스들이 가장 달고 싶어하는 등번호가 됐다. 선동열은 해태 타이거즈에서 18번을 달고 수많은 기록을 세웠고, 1996년 일본 진출 후 KBO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2001년 기아 타이거즈가 '제2의 선동열'로 기대받던 신인 김진우에게 선동열의 영구결번 18번을 주려고 했다. 선동열 본인도 흔쾌히 수락했지만, 팬들의 거센 반발로 시즌 시작 전 김진우가 41번으로 변경했다. 선동열 본인은 "김진우가 18번을 달고 타이거즈 에이스로 성장하길 응원한다"고 말했지만, 팬들의 생각은 달랐던 것이다.

22번: 포수의 번호
포지션 넘버로 포수는 2번이지만, 실제 경기에서 포수들은 22번, 27번, 32번처럼 두 자릿수를 선호한다. 삼성의 전설 이만수가 22번으로 영구결번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2가 들어간 숫자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47번: 좌완 에이스의 상징
47번은 한국 야구에서 좌완 에이스를 상징하는 번호다. 이 전통을 만든 사람은 이상훈이다. 이상훈이 학창시절 메이저리그의 톰 글래빈, 일본의 쿠도 키미야스가 모두 47번을 달았는데, 두 사람 모두 각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좌완투수였다. 이상훈도 이들을 닮고 싶어 47번을 달았고, 프로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면서 47번은 다음 세대 좌완 투수들에게 선망의 번호가 됐다.
그래서 그런가 SK와이번스의 홀드왕이었떤 박희수도 47번이었다. 정우람도 47을 넘고 싶어서 였을까? 57번이었다.
SSG 랜더스 (SK 와이번스) 선수들의 특별한 등번호 사연
인천 연고 SSG 랜더스(전신 SK 와이번스)에는 등번호와 관련된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다.
김강민 0번: "특이해서 골랐다"
SSG의 레전드 김강민은 2003년부터 0번을 달았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본인 말로는 "한 자릿수 번호를 달고 싶었는데 그때 비어있는 번호가 0번밖에 없어서" 골랐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1~9번은 송은범(1), 한승진(2), 송재익(3), 이대수(4), 안재만(5), 정경배(6), 최태원(7), 조원우(9) 등 선배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송은범은 후배였지만 1차 지명 에이스급 유망주라 2군 선수였던 김강민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존재였다.
결과적으로 김강민은 0번을 20년 이상 달며 이 번호를 자신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2025년 6월 은퇴식에서는 SSG 선수단 전원이 0번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고, 상대팀 한화 이글스도 모자에 0번 패치를 부착하며 그의 은퇴를 축하했다. 현재 0번은 SSG에서 임시 결번 처리 중이다.

추신수 17번: 수천만 원 시계를 선물한 사연
2021년 SSG에 입단한 추신수에게 17번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부산고 시절 은사인 조성옥 감독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17번을 달아왔다. 실제로 조성옥이 롯데 입단 후 처음 단 번호가 17번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마이너리거 시절에는 54번, 61번, 16번 등을 달았지만, 빅리그에 안착한 후에는 줄곧 17번을 고집했다.

SSG 입단 당시 17번은 투수 이태양이 달고 있었다. 이태양이 먼저 양보 의사를 밝혔고, 추신수는 고마움의 표시로 미국에서 직접 준비해 온 수천만 원대 스위스 명품 시계를 선물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등번호를 양보받으면 선물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추신수는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나한테 17번은 굉장히 의미 있는 번호다. 초등학교 때부터 17번을 달았다. 이태양이 먼저 양보해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채태인 00번: "동기 옆에 붙어있고 싶어서"
2020년 SK로 이적한 채태인은 삼성 시절 줄곧 달아온 17번 대신 00번을 선택했다. 이유는 후배 노수광이 17번에 애착이 있어 보여 양보한 것이었다.
그럼 왜 하필 00번이었을까? 채태인은 "김강민이 0번을 달고 있길래 동기(1990년생) 옆에 붙어 있겠다는 의미에서 00번을 골랐다"고 했다. 거기에 "'빵빵' 터지는 활약을 하고 싶다는 의미도 담았다"고 덧붙였다.

00번은 개인적으로 미스터 인천 김경기의 넘버로 더 기억이 생생하다. 부진할때 마음을 00 비우자는 마음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최정 14번: 홈런왕의 유신고 시절 초심
SSG의 홈런왕 최정은 2008년부터 유신고 시절 착용했던 14번으로 등번호를 변경했다. 그 전에는 다른 번호를 달았지만, 고교 시절의 추억이 담긴 14번으로 바꾼 것이다.
재미있는 건 동생 최항(현 롯데)도 형을 따라 14번을 달고 있다는 점이다. 최항은 "따로 이유는 없고 형이 달고 있어서였다. 형을 따라서 야구를 했기 때문에 나도 14번을 달게 됐다"고 설명했다. SSG 시절에는 같은 팀이라 못 달았지만, 2024년 롯데로 이적하면서 드디어 14번을 달 수 있게 됐다.
박경완 26번: SSG 최초의 영구결번
SSG 랜더스(전신 SK 와이번스)의 유일한 영구결번은 26번 박경완이다. 박경완은 원클럽맨도 아니고 인천 출신도 아니었지만, SK 왕조 시절 한국시리즈 3회 우승의 기틀을 세운 야전 사령관이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아 구단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27번: 외국인 타자의 상징
SSG에서 27번은 외국인 타자를 상징하는 번호다. SK 왕조 시절 든든한 거포이자 라커룸 리더였던 이호준이 17번에서 27번으로 바꾼 2002년부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고, 이 번호 자체가 이호준을 상징하게 됐다.
이후 구단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타자 제이미 로맥이 2017년부터 2021년 은퇴할 때까지 27번을 달았다. 로맥 은퇴 후 구단은 27번을 팀 주축 외국인 타자를 상징하는 번호로 남겼다.
김성근 감독 38번: "삼삼하고 팔팔한 야구"
SK 왕조를 이끈 김성근 감독은 38번을 달았다. 이유가 재미있다. "삼삼하고(3) 팔팔한(8) 야구를 보여주겠다"는 뜻에서 38번을 감독 등번호로 정했다고 한다.

역대 KBO 영구결번 명단과 번호에 담긴 특별한 의미
영구결번은 구단이 특정 선수의 업적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의미로 그 번호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제도다.
KBO 1호 영구결번: 김영신 54번
KBO 최초의 영구결번은 OB 베어스(현 두산)의 포수 김영신의 54번이다. 특이하게도 이 영구결번은 성적이나 공헌도가 아닌 추모의 의미로 지정된 유일한 예외 사례다.
김영신은 1984년 LA 올림픽 국가대표 포수로 촉망받던 유망주였지만, 프로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어려움을 겪었다. 1986년 성적 부진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구단은 그를 추모하는 의미로 5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주요 영구결번 현황
| 구단 | 선수 | 등번호 |
|---|---|---|
| KIA 타이거즈 | 선동열, 이종범 | 18번, 7번 |
| 삼성 라이온즈 | 이만수, 양준혁, 이승엽, 오승환 | 22번, 10번, 36번, 21번 |
| LG 트윈스 | 김용수, 이병규, 박용택 | 41번, 9번, 33번 |
| 두산 베어스 | 김영신, 박철순 | 54번, 21번 |
| 롯데 자이언츠 | 최동원, 이대호 | 11번, 10번 |
| 한화 이글스 | 송진우, 정민철, 장종훈, 김태균 | 21번, 23번, 35번, 52번 |
| SSG 랜더스 | 박경완 | 26번 |
이승엽 36번: 미리 예약된 영구결번
삼성의 이승엽 36번은 독특한 사례다. 2003년 이승엽이 56홈런을 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을 때, 김재하 당시 삼성 단장이 "은퇴 후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미리 밝혔다. 이후 36번은 준영구결번 처리가 되어 아무도 달지 않다가 이승엽이 삼성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36번을 달게 됐고, 2017년 은퇴와 함께 정식 영구결번이 됐다.
등번호에 담긴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42번: 외국인 선수들이 선호하는 번호
메이저리그에서 42번은 재키 로빈슨을 기리기 위해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번호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아무도 달 수 없는 번호지만, KBO나 일본에서는 외국인 에이스들이 선호하는 번호가 됐다.
일본에서는 42가 '죽음(し に)'을 연상시켜 일본인 선수들이 기피하지만, 미국에서 달 수 없는 번호를 해외에서라도 달고 싶어하는 외국인 투수들에게는 인기 번호다.
0번과 00번의 차이
재미있는 점은 0번과 00번이 다른 번호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0은 말 그대로 1보다 작은 0을 나타내는 반면, 00은 99보다 큰 100의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같은 팀에 0번과 00번이 공존할 수 있다.
마스코트도 등번호가 있다
SSG 랜더스의 마스코트 랜디는 559번을 달고 있다. 팀명 SSG와 모양이 비슷해서 정해진 번호다. 559를 세로로 보면 SSG처럼 보인다는 센스. 소문자일때 더 비슷해보이는데 559 = ssg 와 비슷한 모양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제대회에서는 0번 사용 불가
KBO에서는 0번, 00번을 달 수 있지만, 국제대회에서는 1~99번만 사용 가능하다. 그래서 김강민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9번을 달았다.

메이저리그와 일본의 등번호 문화
MLB: 영구결번의 원조
영구결번 제도는 1939년 뉴욕 양키스에서 시작됐다. 루 게릭의 4번이 최초의 영구결번이다. 루 게릭은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역사상 최고의 1루수로 불린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윌리 메이스의 24번이 많은 선수들이 선망하는 번호고, 특히 흑인 외야수들은 24번을 달거나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25번을 다는 경우가 많다. 로베르토 클레멘테의 21번도 중남미 출신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일본: 세습과 전통의 번호
일본프로야구에서 등번호는 개인의 상징보다는 팀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선배의 역사를 이어받는다는 의미가 있어 번호를 보고 팀의 에이스를 알 수 있다. 한국야구에서 선수들이 선호한다는 포지션 넘버도 사실 원조를 따져보면 일본에서 건너온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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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관련 자주 묻는 질문 (FAQ)
Q. KBO에서 등번호는 몇 번까지 가능한가요?
A. 정식 선수는 0번부터 99번까지 사용 가능합니다. 100번 이상은 육성 선수나 코칭스태프가 주로 사용합니다. 육성 선수는 01, 02 같은 방식으로 달기도 하지만, 정식 선수 등록 시에는 이런 방식을 쓰지 못합니다.
Q. 영구결번이 가장 많은 KBO 구단은 어디인가요?
A. 한화 이글스(4명: 송진우, 정민철, 장종훈, 김태균)와 삼성 라이온즈(4명: 이만수, 양준혁, 이승엽, 오승환)가 각각 4개로 가장 많습니다.
Q. 영구결번 없이 결번 처리된 번호도 있나요?
A. 네. SSG의 김강민 0번처럼 임시 결번 처리된 경우가 있고, 삼성의 박한이 33번처럼 공식 영구결번은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다른 선수에게 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Q. 트레이드나 이적 시 등번호는 어떻게 되나요?
A. 새 팀에서 원하는 번호가 비어 있으면 그대로 사용할 수 있고, 다른 선수가 쓰고 있으면 양보를 요청하거나 다른 번호를 선택해야 합니다. 추신수-이태양 사례처럼 양보받으면 선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Q. 신인 선수는 등번호를 어떻게 받나요?
A. 보통 구단에서 빈 번호 중 높은 번호를 배정하거나, 선수가 희망하는 번호가 있으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조율합니다. 1차 지명 등 기대주에게는 좋은 번호를 주기도 합니다.
마치며
등번호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 안에는 선수의 꿈, 존경하는 선배의 흔적, 개인적인 추억이 담겨 있다. 경기를 볼 때 선수들의 등번호를 눈여겨보면, 그들의 야구 인생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인천 팬으로서 SSG 선수들의 등번호 사연을 정리하면서 새삼 팀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김강민의 0번처럼 특별한 의미를 가진 번호가 앞으로도 계속 탄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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