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프로에서 방출당한 선수.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한 선수.
독립리그에서 기회를 노리던 선수.
이들에게 "한 번 더"의 기회가 주어졌다.
바로 호주 프로야구리그(ABL)의 한국인 팀,
질롱코리아(Geelong-Korea)다.
마치 한국의 고양원더스를 떠올리게 하는 팀이다.
2018년 창단부터 2023년 해체까지.
5년간 꿈을 쫓았던 야구인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질롱코리아(Geelong-Korea)란? 호주 ABL의 유일한 한국 팀
질롱코리아는 2018년 5월에 창단된
호주 프로야구리그(ABL) 소속 팀이다.
연고지는 호주 빅토리아주 질롱(Geelong).
홈구장은 질롱 베이스볼 파크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 선수들로만 구성된 팀이었다.
해외 리그에서 한국인 주축 팀은
일본 독립리그의 '서울 해치' 이후 두 번째였다.
호주 프로야구리그(ABL)란?
- 매년 11월~1월 진행 (윈터리그)
- 팀당 40경기
- MLB, NPB, KBO 등에서 선수 파견
- 북반구 선수들의 겨울 실전 무대
질롱코리아는 이 리그의 7번째 팀으로 합류했다.
창단 배경: 200명이 몰린 트라이아웃과 '간절함'
질롱코리아의 창단 취지는 명확했다.
"한국에서 기회를 잃은 야구인들에게
새로운 무대를 제공하자."
프로에서 방출된 선수,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한 선수,
독립리그에서 재기를 노리는 선수들.
이들에게 프로 복귀의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
질롱코리아의 목표였다.
창단과 함께 했던 시작은
2018년 9월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서 멤버 선발 트라이아웃이 열렸다.
최대 25명 선발 예정이었는데 무려 200명이 참가했다.
경쟁률이 거의 10대1에 육박한다.
야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레전드 구대성 감독과 '이기는 야구'가 아닌 '성장하는 야구'
질롱코리아의 초대 감독은
한화이글스 출신 한국야구의 전설 구대성이었다.
한화 이글스의 전설.
KBO 통산 67승 214세이브.
1996년 정규리그 MVP.
1999년 한국시리즈 MVP.
그는 2010년 KBO 은퇴 후
호주로 건너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호주에서도 3회 세이브왕을 차지한 레전드다.
초대 단장은 박충식.
1985년 한국시리즈에서 15회 완투의 주인공이다.
두 레전드가 함께 팀을 이끌게 됐다.
구대성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성적보다는 선수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해 뛰고,
이 선수들의 실력이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나아졌구나 하는 걸 보고 싶다."
승패보다 선수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질롱코리아 역대 시즌 성적 (2018~2023년)
질롱코리아의 5년 역사를 정리해 본다.
| 시즌 | 감독 | 성적 | 비고 |
|---|---|---|---|
| 2018-19 | 구대성 | 최하위 | 창단 첫 시즌 |
| 2019-20 | 그램 로이드 | 최하위 | KBO 연합팀 구성 |
| 2020-21 | - | 불참 | 코로나19 |
| 2021-22 | - | 리그 취소 | 코로나19 |
| 2022-23 | 이병규 | 13승 27패 | 3년 만에 복귀 |
통산 성적은 18승 62패, 승률 0.225.
솔직히 말하면 성적은 좋지 않았다.
매 시즌 디비전 최하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그게 당연한 거였다.
다른 팀들은 MLB 마이너리거,
호주 국가대표급 선수들로 구성됐다.
질롱코리아는 KBO에서도 2군을 못 버텨
방출된 선수들이 주축이었다.
애초에 전력 차이가 컸다.
그래도 이들은 끝까지 뛰었다.
"한 번 더"를 위해서.
질롱코리아가 배출한 KBO 스타들 (성공사례)
질롱코리아의 진짜 가치는
팀 성적이 아니라 개인의 성장에 있었다.
질롱코리아를 거쳐 KBO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선수들을 정리해 본다.
홍창기 (LG 트윈스) - 호주 유학으로 눈뜬 타격 잠재력
질롱코리아 출신 최고의 성공 사례다.
홍창기는 질롱코리아를 엘지트윈스에서 유학용으로 갔다.
공부를 위해 간 것이다.
2019-20시즌 질롱코리아에서
OPS 0.9가 넘는 활약을 펼쳤다.
팀 내 최고 타자였다.
소속팀 LG로 돌아온 후
19년도 엘지에서 주전으로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질롱코리아에서의 실전 경험이 한국에서 스타가 되는데 도움이 된 듯하다.
이후 주전 외야수로 자리 잡았고, 23년 LG트윈스 우승의 주역이 됐다.
노경은 (SSG 랜더스) - 406일의 공백을 깬 38세의 부활
질롱코리아 출신 중 가장 드라마틱한 스토리다.
노경은은 2003년 두산 베어스 1차 지명으로 프로에 입문했다.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에서 2021년 사실상 방출을 당했다.
나이는 이미 37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은퇴를 예상했다.
그런데 노경은은 포기하지 않았다.
2019-20시즌 질롱코리아에서
406일 만에 실전 마운드에 올랐다.
개막전 선발 등판해 4⅓이닝 1실점 호투.
실전 감각을 되살렸다.

그리고 2021년 11월, SSG 랜더스 입단 테스트에 합격했다.
38세에 새 출발을 한 것이다.
SSG 이적 후 성적:
- 2022년: 41경기 12승 5패 ERA 3.05 → SSG 우승 기여
- 2023년: 76경기 30홀드 → KBO 최초 2년 연속 30홀드
- 2024년: 77경기 38홀드 → 최고령 홀드왕
- 2025년: 77경기 35홀드 → KBO 최초 3년 연속 30홀드
방출 선수에서 SSG 필승조 핵심으로.
나이를 거꾸로 먹는 활약이다.
2024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노경은은
SSG와 2+1년 총액 25억원에 재계약했다.
부활의 아이콘 노경은이다.
동료 오태곤은 이렇게 말했다.
"선수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나이에 그런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2년 동안 증명했다.
대전이나 대구 원정 끝나고 올라오면 야수들은 다 힘든데,
새벽 2시에 러닝머신에서 30분 동안 뛰더라."
노경은의 성공 비결은 철저한 자기 관리였다.
질롱코리아로부터 시작된 제2의 전성기, 그 여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2026 WBC 대표팀 최종 명단에도 포함됐다.
조형우 & 하재훈 (SSG 랜더스) - 유망주 성장과 타자 전향의 성공
SSG 랜더스에서 질롱코리아를 거친 선수가 또 있다.
바로 조형우와 하재훈이다.
두 선수는 2022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2022-23시즌 질롱코리아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11월 13일 호주로 출발해
약 3개월간 실전 경험을 쌓았다.
홍창기와 마찬가지로 실전감각 트레이닝을 위해 유학간것이다.
조형우 - 미래의 정포수
2020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로 지명된 젊은 포수다.
질롱코리아에서 실전 경험을 쌓은 조형우는
이후 SSG의 차세대 주전 포수로 성장했다.

2025시즌 102경기 출장.
타율 0.238, 4홈런 29타점.
포수로 696이닝을 소화하며 세대교체를 이뤘다.
조형우는 질롱코리아의 경험이후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며 ssg랜더스의 주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하재훈 - 투수에서 타자로, 다시 도전
하재훈은 정말 독특한 커리어를 가진 선수다.
고교 졸업 후 미국 마이너리그로 직행.
트리플A까지 올라간 타자였다.
그러다 손목 부상으로 투수로 전향.
2019년 SK 와이번스 입단 후
61경기 36세이브 ERA 1.98로 세이브왕 등극.
데뷔 첫해에 마무리 투수로 대활약했다.
하지만 어깨 부상으로 투수 생명이 위태로워졌고,
2022시즌부터 다시 타자로 전향했다.
타자→투수→타자의 독특한 커리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질롱코리아에서의 활약이 눈부셨다.
18경기에서 무려 11개 홈런을 때려냈다.
안타 21개 중 장타가 13개.
방망이를 휘두르면 장타가 터졌다.
호주에서 자신감을 회복한 하재훈은
2023시즌 77경기 타율 0.303을 기록하며
타자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하재훈은 팀 동료들이 공인하는 '노력왕'이다.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모습이
질롱코리아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백승현 (LG 트윈스)
원래 내야수였던 그는
2019-20시즌 질롱코리아에서 깜짝 등판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시속 150km/h가 넘는 공을 던졌다.
모두가 놀랐다.
이후 LG에서도 투수로 전향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배지환 (피츠버그 파이리츠)
질롱코리아에서 실전 감각을 끌어올린 후
MLB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입단했다.
한국인 야수의 MLB 도전이라는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기타 활약 선수들
- 고승민 (롯데 자이언츠) - 주력 선수로 성장
- 이재원 (LG 트윈스) - '빅보이'로 성장
- 전병우, 임지열 (키움 히어로즈) - 포스트시즌 활약
이들 모두 질롱코리아에서
겨울 동안 실전 경험을 쌓고
한 단계 성장해 돌아왔다.

50세 구대성의 등판, 나이를 잊은 투혼
질롱코리아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있다.
2019년 1월, 50세가 된 구대성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올랐다.
감독이 선수로 등판한 것이다.
9회 구원 등판해 17개의 공을 던졌다.
1이닝 1안타 무실점.
50세에도 130km/h 이상 던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답답해서 내가 던진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2022-23시즌에는 53세의 나이로
다시 한번 질롱코리아 선수로 합류했다.
호주리그 최고령 투수 기록을 세웠다.
어린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야구에 대한 열정만 있으면 된다."
팀 해체 이유와 질롱코리아가 한국 야구에 남긴 것
2023년 8월 15일. 질롱코리아의 ABL 탈퇴가 발표됐다.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질롱코리아는 2023-24시즌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 50여 명의 선수단을 준비 중이었다.
해체 배경:
- 뉴질랜드 오클랜드 투아타라 팀의 호주리그 불참 선언
- ABL 8팀→7팀 홀수 체제 문제
- ABL 측 합병 제안 → 질롱코리아 거절
- ABL의 호주 6팀 체제 회귀 결정 (질롱코리아 배제 결정)
결국 리그 운영상의 이유로 질롱코리아가 제외된 것이다.
글렌 윌리엄스 ABL CEO는 말했다.
"질롱코리아가 호주 리그를 떠나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심도 있는 협의 끝에 내린 결정이다."
질롱코리아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매우 아쉽다. 한국 유망주들이 성장할 기회를 계속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질롱코리아와 한국야구
질롱코리아는 해체됐지만
의미 있는 것들을 남겼다.
1. 꿈의 무대
방출·미지명 선수들에게 "한 번 더"의 기회를 줬다.
2. 성공 사례
홍창기, 배지환, 노경은, 조형우, 하재훈 등 실제로 성장한 선수들이 나왔다.
3. 겨울야구
야구팬들에게 겨울에도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볼 수 있게 해줬다.
4. 도전 정신
포기하지 않는 야구인들의 아름다운 도전을 보여줬다.
마무리
질롱코리아.
5년간 통산 18승 62패. 승률 0.225.
숫자만 보면 초라한 성적이다.
하지만 그 숫자 뒤에는 야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프로에서 방출당해도,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해도,
그들은 호주까지 가서 야구를 했다.
"한 번 더"를 위해.
그 도전 자체가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팀은 해체됐지만
질롱코리아의 정신은
그곳을 거쳐간 선수들 안에 남아 있을 것이다.
야구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독립야구단이 많이 생겼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두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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