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트도 그냥 대는 게 아니다. 거기엔 감독의 수 싸움과 선수의 희생이 담겨 있다."
야구를 보다 보면 타자가 배트를 크게 휘두르지 않고, 배트를 눕혀 공을 살짝 갖다 대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번트(Bunt)다. 어떤 번트는 주자를 보내기 위한 희생번트이고, 어떤 번트는 자기가 살기 위한 기습번트다. 똑같이 배트를 대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종류가 나뉠까?
오늘은 야구 번트의 종류와 역할을 총정리한다. 희생번트, 스퀴즈 번트, 기습번트가 어떻게 다른지, 번트에는 어떤 역사가 있는지 살펴본다. 특히 김재박의 전설적인 '개구리 번트'와, SK 와이번스 시절 '번트의 정석'을 보여준 번티스트 조동화의 이야기까지 함께 다룬다. 인천 야구 팬이라면 더욱 반가울 번트 이야기, 지금 시작한다.

야구 번트 뜻과 기본 개념: 정밀함이 필요한 이유

번트(Bunt)는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지 않고, 배트를 가로로 눕혀 공을 살짝 갖다 대어 내야에 굴리는 타격 기술이다. 공을 멀리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깝고 느리게 굴리는 것이 목적이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번트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기술이다. 배트를 어중간하게 대면 공이 뜨거나(인플라이) 파울이 되기 일쑤다. 너무 세게 대면 야수에게 빠르게 잡히고, 너무 약하게 대면 포수 앞에 떨어져 선행 주자가 잡힌다. 그래서 일부 지도자들은 "정밀하게 굴려야 하는 번트가 타격보다 어렵다"고까지 말한다.
번트의 기본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내 아웃을 내주더라도 주자를 다음 베이스로 보내는 것(희생), 다른 하나는 수비의 허를 찔러 나도 살아 나가는 것(기습)이다. 이 목적의 차이에 따라 번트의 종류가 나뉜다. 기본중의 기본이기 때문에 많은 훈련이 동반되어야 한다. 잘하면 본전이지만 못하면 욕먹는 게 번트라서 탈이다.
야구 번트 종류 총정리: 목적에 따른 5가지 방식
번트는 목적과 상황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대표적인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 번트 종류 | 목적 |
|---|---|
| 희생번트(보내기번트) | 내가 아웃되며 주자를 진루시킴 |
| 스퀴즈 번트 |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여 득점 |
| 기습번트(세이프티 번트) | 수비 허를 찔러 나도 안타로 살아남 |
| 푸시 번트 | 전진수비 사이로 강하게 밀어 넣음 |
| 페이크 번트 슬래시(버스터) | 번트 자세에서 강공으로 전환 |
1. 희생번트 (보내기번트)
가장 흔한 번트다. 타자 자신은 아웃되는 대신, 주자를 다음 베이스로 안전하게 보내는 번트다. 그래서 '희생(犧牲)'번트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무사 1루에서 희생번트를 대면, 타자는 1루에서 아웃되지만 주자는 2루로 진루해 1사 2루의 득점권 찬스가 만들어진다. 아웃 카운트 하나를 내주고 주자를 진루시키는, 전형적인 '스몰볼(작전 야구)'의 상징이다.
2. 스퀴즈 번트 (세이프티 스퀴즈와 차이)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여 득점하기 위한 번트다. '쥐어짜낸다(squeeze)'는 의미로, 1점이 절실한 상황에서 쓴다. 타자가 번트를 대는 동시에 3루 주자가 홈으로 내달리는 것을 '스퀴즈 번트'라 한다. 특히 3루 주자가 번트를 확인한 뒤에 홈으로 뛰는 안전한 방식을 '세이프티 스퀴즈'라고 부른다. 뒤에 나올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가 바로 이 세이프티 스퀴즈의 명장면이다.
위의 움짤은 스퀴즈번트인데 본인도 살려고 시도한 기습번트이자 스퀴즈번트 장면이다. 아무튼 어렵지 않게 쉽게 이해하지면, 정석대로만 해석하면 스퀴즈번트인데 실패한 스퀴즈 번트이다. 3루주자가 달려오지만 1루수의 토스로 아웃이 선언되는 장면이다.
3. 기습번트 (세이프티 번트)
희생번트가 '나를 버리는' 번트라면, 기습번트는 '나도 사는' 번트다. 수비가 방심한 틈을 노려, 발 빠른 타자가 기습적으로 번트를 대고 1루까지 살아 나가는 것이다. 성공하면 내야안타가 된다. 이전 글에서 다룬 SSG 최지훈의 기습 번트 내야안타가 대표적인 예다. 주로 발 빠른 타자들이 구사하는 무기다.
4. 페이크 번트 슬래시 (버스터 강공 전환)

번트를 대는 척하다가 갑자기 배트를 돌려 강하게 치는 작전이다. 흔히 '버스터'라고 부르지만, 방송에서는 '강공 전환'이나 '페이크 번트 슬래시'로 순화해 부른다. 번트를 예상하고 내야수가 전진 수비를 하면, 그 빈 공간을 노려 강공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인천 팬에게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2018년 한국시리즈 3차전, SK 이재원의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 홈런이다. 번트 자세에서 그대로 받아쳐 홈런을 만든 명장면이었다.
5. 쓰리 번트 아웃 (번트 파울은 삼진)
번트에는 무서운 규칙이 하나 있다. 2스트라이크 이후 번트를 댔는데 파울이 되면, 곧바로 삼진 아웃이다. 왜 2스트라이크 이후 번트 파울은 삼진일까?
투수가 아웃카운트를 잡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는데, 타자가 번트로 툭툭 대며 파울을 만들어 투수의 진을 빼놓는 꼼수를 방지하기 위한 야구의 독특한 규칙이다. 이를 '쓰리 번트 아웃'이라고 한다. 2스트라이크 이후 번트로 시간을 끄는 것을 막기 위한 규칙이다. 이게 없으면 투수가 공을 수백개 던질때까지 번트로 파울을 무한 생성할 수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야구사 역대 최고의 번트 명장면: 1982년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번트를 꼽으라면, 단연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다.
때는 1982년 9월 14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 한일전이었다. 한국은 8회까지 일본에 0-2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다. 그런데 8회말, 김정수의 2루타로 1점을 만회하고, 희생번트로 주자를 3루까지 보내며 1사 3루의 찬스를 잡았다. 타석에는 준족 김재박이 들어섰다.
스퀴즈 번트를 눈치챈 일본 배터리는, 번트를 못 대게 하려고 공을 홈플레이트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바깥쪽으로 던졌다(피치아웃). 보통이라면 번트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공이었다. 그런데 김재박은 포기하지 않았다. 개구리처럼 폴짝 뛰어올라, 그 빠진 공에 기어코 배트를 갖다 댄 것이다. 번트 타구는 3루 선상을 타고 굴러 내야안타가 됐고, 3루 주자가 홈을 밟으며 2-2 동점을 만들었다.
이 기적 같은 번트로 살아난 한국은, 이어진 2사 1·3루에서 한대화의 3점 홈런으로 5-2 역전에 성공했고, 결국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껑충 뛰어오르는 모습이 개구리를 닮았다 하여 '개구리 번트'(또는 캥거루 번트)라 불리게 된 이 장면은, 4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한국 야구 최고의 명장면이다.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있다. 사실 이 번트는 사인 미스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벤치에서는 스퀴즈 사인을 내지 않았는데, 김재박이 사인을 잘못 이해해 몸을 날려 번트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3루 주자도 미리 뛰지 않았기에, 결과적으로는 세이프티 스퀴즈가 됐다. 실수가 전설을 만든 셈이다.

이 개구리 번트는 훗날 재현되기도 했다. 2009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IA 이용규가 김재박과 거의 똑같은 개구리 번트로 득점을 만들어내며, 27년 만에 전설을 소환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나온 개구리번트는 실패한 번트지만 김재박과 꼭 닮아있어서 재미있다.
SK 와이번스의 번티스트, 조동화 (현 SSG 코치)

인천 팬으로서 번트 이야기에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있다. 바로 SK 와이번스의 '번티스트' 조동화다.
조동화는 2000년 SK에 육성선수로 입단해, 2018년 은퇴까지 18년간 오직 SK 한 팀에서만 뛴 원클럽맨이다. 화려한 스타는 아니었지만, 빠른 발과 정확한 번트, 넓은 수비 범위로 2000년대 말 'SK 왕조'의 숨은 주역이 됐다. 특히 포스트시즌, 그중에서도 한국시리즈에서 유독 강해 '가을동화'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를 '번티스트(Bunt+ist)'로 만든 것은 바로 번트다. 조동화는 통산 205개의 희생번트를 성공시켰는데, 이는 KBO 리그 역대 4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묵묵히 주자를 진루시킨 그의 번트는, 말 그대로 '희생번트의 정석'이었다. 은퇴 당시 그는 "그동안 팀을 위해 희생번트를 많이 댔는데, 이제는 가족과 후배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겠다"는 소감을 남겨 뭉클함을 자아냈다.
아쉽게도 희생번트 장면이 아닌 기습번트 장면을 가져왔다. 위의 이미지가 기습번트 장면이다. 하지만 기습번트가 더 귀해서 좋다.
어쨌든 반가운 사실은, 조동화가 지금도 인천 SSG 랜더스에서 코치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SK에서 SSG로 이어지는 인천 야구의 역사 속에서, 선수로서 헌신했던 그가 이제는 지도자로서 후배들에게 그 '번트의 정석'을 전수하고 있는 것이다. 선수 시절 자신을 희생했던 번티스트가, 코치가 되어 인천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SSG 팬으로서 참 든든하다.
야구 황당 짤: 실제로 번트 홈런이 가능할까?
웃기는 짤로 나오는 번트 홈런 장면들도 한번보자.


눈치빠른 분은 알겠지만, 당연하게도 개그를 위한 웃긴짤이다.
실제 야구 경기 규칙상 번트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더라도 홈런으로 인정은 된다. 다만 물리적으로 배트를 대기만 해서 담장을 넘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위 짤방들은 야구 게임의 오류(버그) 화면이거나 올스타전 이벤트 경기에서 연출된 유머러스한 장면들이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 기대하지 말라.
어릴적 초등학교 1학년때 아버지에게 번트쳤는데 담장 넘어가는 홈런이 나오면 어떡하냐고 물어봤었는데 혼났던 적이 있다. 절대로 나올 수 없었기에 혼이 났던 것이다. 그 상상을 현실짤로 만든 것이 저 위의 움짤들이다. 크
번트 자주 묻는 질문 (Q&A)
Q1. 번트가 정확히 뭔가요?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지 않고 가로로 눕혀 공을 살짝 대어 내야에 느리게 굴리는 타격 기술이다. 주자를 진루시키거나(희생), 수비 허를 찔러 살아 나가기 위해(기습) 사용한다.
Q2. 희생번트와 기습번트의 차이는 뭔가요?
희생번트는 타자 자신이 아웃되는 대신 주자를 진루시키는 번트이고, 기습번트는 수비의 허를 찔러 타자 자신도 1루에 살아 나가려는(내야안타를 노리는) 번트다. 목적이 정반대다.
Q3. 스퀴즈 번트가 뭔가요?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여 득점하기 위한 번트다. 타자가 번트를 대는 동시에 3루 주자가 홈으로 뛴다. 1점이 급한 상황에서 쓰는 작전으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가 대표적인 세이프티 스퀴즈 사례다.
Q4.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는 무슨 사건인가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 한일전에서, 김재박이 일본의 피치아웃(고의로 뺀 공)에 개구리처럼 뛰어올라 번트를 성공시켜 동점을 만든 전설적인 장면이다. 이후 한대화의 3점 홈런으로 역전, 한국이 우승했다.
Q5. 번티스트 조동화는 어떤 선수인가요?
SK 와이번스에서 18년간 뛴 원클럽맨으로, 통산 205개의 희생번트(KBO 역대 4위)를 기록해 '번티스트'로 불렸다. '가을동화'라는 별명도 있으며, 현재 인천 SSG 랜더스 코치로 활동 중이다.
마치며: 작은 번트 하나에 담긴 야구의 깊이
번트는 야구에서 가장 화려하지 않은 플레이다. 홈런처럼 관중을 열광시키지도, 삼진처럼 짜릿하지도 않다. 하지만 번트 안에는 감독의 수 싸움, 선수의 희생, 그리고 찰나의 승부 감각이 모두 담겨 있다.
김재박은 실수에서 비롯된 번트로 전설을 만들었고, 조동화는 205번의 희생번트로 팀을 위해 자신을 내던졌다. 화려하진 않지만, 이런 번트들이 모여 승리가 되고 우승이 된다. 야구가 '각본 없는 드라마'이자 '디테일의 스포츠'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야구를 볼 때 타자가 배트를 눕히는 모습이 보이면, 그것이 희생번트인지 기습번트인지, 어떤 작전이 숨어 있는지 한번 헤아려 보자. 번트의 종류를 알고 나면, 야구가 훨씬 더 깊고 재미있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인천 SSG 더그아웃 어딘가에서, 번티스트 조동화 코치가 후배들에게 번트를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번트는 야구의 디테일이다. 그 작은 희생이, 승리의 씨앗이 된다.
EXID 하니의 번트 시도장면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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